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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중요성 1편

by 과유과 2024. 6. 11.

반야심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첫 구절, '관자제고살 행심 받냐 바람일따시 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하는 부분이라고 했어요. '조견오온개공도일체고액' 이게 인지 반야심경의 핵심이면서 우리 팔만대장경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죠. 전체적으로 오온개공에 대해서 그리고 오온이 공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도일체고액 하는 것인지 일체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통, 괴로움, 이런 것에서 오늘 이제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

 

존재의 이유

아, 이제 한번 정리를 해보죠. 사람들은 괴로워합니다. 부처님은 괴로움이 없는 분이죠. 여러분이 만약에 여기서 부처가 된다면, 여러분이 갑자기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금 여기에 자기에서 괴로움이 사라진 거예요.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사라지느냐? 허망한 분별망상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괴로움도 사라진다.

 

우리는 괴로운 존재들이고, 부처님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신 분이에요. 그러면 이제 불교의 핵심은 사성제라고 했는데, 즉, 괴로운데 중생들이 괴로움이 문제인데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이거 딱 하나를 불교에서는 얘기하고 있어요.

 

뭐가 왜 괴로우냐, 누가 괴로우냐, '내가 괴롭다'는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괴롭다'는 거예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럼 '내가 괴로운 거 나를'일반인들은 불교가 아닌 일반 세상에서는 '내가 있지' 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겨요. 이렇게 몸도 있고. 마음도 있고 이걸 쓰고 사는 내가 있는 게 당연하지, 내가 있는 거는 당연한 거니까 그냥 문제 삼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느냐 이것만 궁금해하는 말이죠.

 

그런데 이게 불교의 통찰에서는 그 나아가 괴롭다고 여기는 자기 내가 괴롭다고 할 때 그 나아가 괴롭다고 여겼던 그 내가 실제 하느냐 진짜 있는 거냐? 괴로움은 둘째치고, 그 괴로워하는 자기가 진짜 존재하느냐 이거를 본단 말이죠. 왜 이것을 보느냐? 나라는 게 실제 하지 않는다면 정말 실제 하거나 진짜인 것이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괴로움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생로병사라고 해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게 괴로움이야. 이렇게 얘기한 말이에요. 난 늙기 싫고, 병들기 싫고, 죽기 싫은데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라고 얘기한 말이에요. 그럼 내가 왜 늙고 병들고 죽지? 했더니 태어나니까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를 해결해줘 이러는데 불교에서는 약간 본질적으로 들어간다는 말이에요. 네가 정말 늙고 병들고 죽는 게 맞아? 네가 정말 태어난 게 맞아? 그것부터 묻는 말이죠. 내가 정말 태어났다면 내가 늙고 병들고 죽는 게 맞죠?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통찰에서 보니까 그 나라는 것,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여겼던 그것이 허망한 망상분별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신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내가 실제 하지 않아, 나라는 게 진짜가 아니야. 그런데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어디 있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셨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부처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이렇게 몸이 내가 이렇게 있고, 내가 내 마음을 가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의지의식을... 일으키면서 이렇게 내가 분명히 명백하게 내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한단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다양한 방편을 구사하신 거예요. 그걸 이제 불교 교리라고 표현을 하죠.

 

 

불교의 방편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무하라는 사실을 연기직 무하라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납득하게 할 수 있을까? 해서 이제 이렇게 한 거예요. 사람들이 도대체 뭐를 가지고 자기라고 하지? 이거를 한번 통찰해 주신 거예요.

 

그랬더니 일반 중생들은 사람들은 색수상행식이라는 몸과 색은 이제 몸이죠 나를 물질과 정신 두 개로 갈라놓더라는 거예요. 몸과 마음으로 몸을 색온이라고 불렀고요 색이고 빛깔과 모양을 가진 색이라고 불렀고 색은 온은 쌓인다는 거죠. 몸을 나로 이렇게 쌓아 가지고 취하고 있더라는 거죠. 그리고 마음이라고 여기는 것이 네 가지가 있더라는 거예요. 느낌, 생각, 의지, 의식. 이렇게 이제 제가 단순화시켜서 설명을 했는데 수상행식이 바로 마음이라고 느끼더라는 거예요.

 

중생들은 그러니까 불교에서 오온 12처 18개 이렇게 설명을 하니까 부처님도 오온을 얘기하지 않으셨느냐? 부처님은 오온이 있다는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오온이 모인 것을 나라고 여기는 우리의 나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지를 말해주고자 오온을 방편으로 설명한 거지. 오온이 실제 있다는 얘기가 아니죠.

 

오온이 오온 무아라는 것을 설하기 위해서 오온을 설명한 거에요. 사람들은 중생들은 오온을 실제 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오온 각각이 정말 실제 하느냐 이걸 설명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씩 보자는 말이죠.

 

지금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오늘은요 오온에 대한 교리를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앞 시간에 이제 교리적인 색수상행식은 설명을 하나씩 해드렸고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이제 이야기를 들으실 때 '지금 처음 듣는다' 하는 마음으로, '지금 처음 듣는다는' 마음으로 들으세요. 나는 배경 지식이 없다, 모르겠다, 진리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마음으로 딱 제로에서 그냥 안다는 마음으로 들으면 제가 하는 말 중에 몇 가지는 알겠고 몇 가지는 모르겠잖아요.

 

그러면 '아는 말은 아, 오케이, 오케이, 저건 내가 아는 거야' 해서 '탁탁' 취하고 진짜 아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식대로 해석해서 아는 그 '암' 그거를 그냥 '착취'할 뿐이에요. 제 말을 직접 받아들이지 않고, 제 말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 제 말에 대한 자기의 해석, '내가 알고 있어요, 저 말은 저 교리, 내가 아는 교리야'라는 그런 식으로 자기가 해석해서 아는 그걸 취해버리니까, 제 말은 앞에서 딱 차단이 되어버려요.

 

자기가 여기까지 왔다가, 자기의 해석한 분별의 필터로 '내가 꿀꺽 삼키는 거예요'. 그러면 진짜로 법문을 듣는 자세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강화하는 것 뿐이에요. 자기 분별을 강화할 뿐이에요. 그러니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텅 빈 마음으로' 한번 들어보시란 말이죠.

 

이 몸이 우리는 '나'라고 여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몸이 '나'일 수 없는 이유는, 이 몸이 독자적으로 '나'인 것 같잖아요. 독자적으로 '나'인 것 같은데 제가 그 말씀드렸죠. 간단하게 이 주변에서 공기를 싹 빼버리면, '내가 이렇게 진짜 나일 수 있느냐, 내가 몸으로 걷고 뛰고 밥 먹고 일을 할 수 있느냐' 말이죠.

 

공기가 싹 없어지면, 나는 이 자리에서 바로 쓰러지겠죠. 들숨을 쉬지 못하면, 우린 여기서 '내가 있다고'. 할 수가 없어요. 내 몸은 바로 무너질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나다 해서 내 몸이 여기 진짜로 있다고 여겼는데, 이 몸은 공기가 없으면 나도 없는 거였어요. 이 몸이 없는 거였어요. 공기의 의존에서만 나는 의존적으로만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뿐 아니라, 물이 없으면 물 며칠 못 먹으면 죽겠죠. 음식을 못 먹으면 죽겠죠.

 

인체의 순환

모든 나를 이루고 있는 이 요소들, 그 요소를 이제 불교 교리에서는 4대라고 해서 지수화풍이라고 했어요. 지의, 흙의 기운, 딱딱한 기운, 물의 기운, 피 침, 이런 물의 기운. 또한 화, 우리 몸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시켜 주는 따뜻한 온도의 기운. 그리고 풍, 숨을 쉬고 움직이고 하는 움직이는 기운들이 대지의 지수화풍이라고 했죠. 외사대인 대지의 지수화풍이 내사대인 내 몸으로 서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거예요. 이 끊임없는 순환작용, 연기적인 순환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 잠시도 있을 수 없어요.

 

공기가 나에게 이렇게 들어와는 바람의 작용으로써, 공기가 나에게 들숨으로써, 이렇게 움직임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나일 수가 없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대지의 지수화풍과 내 몸의 지수화풍 계속 순환할 뿐이에요. 이거는 물이고 이건 내 몸이잖아요?

 

내가 이 물을 먹게 되면 조금 전엔 물이었는데 지금은 내 몸이 됐단 말이에요. 이와 같이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기 걸로 취해요. 그리고 내 것은 끊임없이 바깥으로 배출해요. 똥, 오줌, 땀 이런 다양한 것들로 배출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 몸은 계속해서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도 보면 피부는 한 4개월에 한 번씩 바뀐다고 했죠. 4개월 전, 한 5개월쯤 전에 내 몸의 그 피부는 지금 피부와 전혀 다른 거죠.

 

몸의 모든 것들이 다 순환하고 다 바뀐단 말이죠. 어떤 과학자는 7년이면 몸의 모든 부분이 싹 다 바뀐다 이렇게 표현한 사람도 있고, 또 미립자 차원에서 보면 10에 마이너스 23승 초에 한 번씩 미립자가 계속 바뀐다. 찰나찰나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근원적인 가장 작은 알갱이는 계속해서 바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나'라고 우리는 말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지금까지 근데 그 '나'가 몸이었는 줄 알았는데, 몸은 내가 아니었어요. 몸은 계속 바뀌는 거였으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몸이 내가 아닌데 나가 있어요. 그럼 그 몸은 내가 아닌데 내가 있어요? 그럼 그 '나'는 어디 있을까요? 나는 어디 있을까요? 몸 안에 있거나 몸 바깥에 있거나 어떻게 말할 수가 없겠어요, 그렇죠? 어디 있는지 모르겠죠, 그렇죠?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내가 없어요.

 

이 소리를 듣고 있잖아요. 제 말을 지금 여기 앞에서 고개 끄덕이면서 듣고 있잖아요. 어쨌든 이 자기는 있는데 말이에요. 나는 있는데 이 몸이 내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몸이 그러면 이제 '아, 몸은 내가 아니네'. 몸은 내가 아니네. 그렇게 내가 내 주변에만 이렇게 있겠느냐는 말이에요. 그것도 이미지 생각이에요. 몰라요, 알 수는 없는데 크기도 없는 것 같고 모양도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