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나쁜 사람도 변화할 수 있으며, 불교는 이를 강조한다. 부처님은 99명을 죽인 사람조차 구제하며, 모든 사람은 본래 부처로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정한 생각이나 장면에 머물지 말고,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좋았던 장면이나 나빴던 장면에 집착하면 고통을 유발하고, 이러한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장애를 가져온다. 결국 업은 존재하지만, 이를 저지르는 자나 받는 자는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삶의 진실을 바라보기
우리는 인생의 일부 장면에 집착하며 미래를 특정한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하지만, 이러한 집착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누군가에게 모함당해 진급하지 못한 일을 10년 후까지 기억하며 분노하고 있는 모습은, 그 사람이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음을 나타낸다. 미움을 가득 담은 마음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며, 이는 결국 자기 자신만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부정적인 업장을 해소하고, 진정한 업장 소멸을 위해서는, 과거의 일을 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태를 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가야 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 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진실할 수 없다.
‘한 번 손 씻은 강물에 두 번 다시 손 씻을 수 없다’는 가르침처럼 매 순간 변화하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 또한 변하고 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그 선행이 나중에 큰 결실로 돌아올 수 있으며,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우리의 업에 영향을 미친다. 부처님처럼 착한 행동과 지혜를 닦는 삶을 살아야 하며, 이러한 수행이 우리 인생의 업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과거의 기억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부정적인 생각이 지속되면 분노가 커진다.
한 예로, 1년 전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서, 그는 해킹된 개인 정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매일이 지옥 같다고 느낀다. 비록 해킹될 확률이 희박하더라도, 그 두려움은 마음속에서 커져서 참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우리 모두 교통사고와 같은 위험을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그래서 운전을 하지 않지는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주변에는 교통사고를 두려워해 외출을 꺼리는 경우도 있고, 이런 과도한 두려움은 병적일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것이 나를 억지로 갇히게 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자신을 지옥으로 내리게 한다. 예를 들어, TV에서 누군가 병에 걸려 급사한 이야기를 듣고 즉각적으로 죽음이 두려워지는 경험이 있다.
또한 어르신들이 노후에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가도, 부정적인 정보로 인해 걱정이 생기고 결국 주거지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사람들은 신문 기사에서 초고층 빌딩에 살던 사람이 병원에 늦게 가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초고층 주거지를 꺼리게 된다는 사례도 존재한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죽이기 시작하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 된다. 어떤 사고는 자신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 있으며, 그런 생각만 되돌리면 매우 간단하다. 돈 10억을 버는 것도 잃는 것도 그 생각 하나로 간단해질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믿으면, 비싼 아파트 대신 허름한 시골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선택이 가능해진다. 강원도 양구와 같은 자연에 꽂혀 있으면 그 장소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행복과 건강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억도 안 되는 집에서 즐거운 노후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서울의 병원 바로 옆 아파트'를 선호하며, 그 때문에 10억짜리 아파트를 사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 하나로 인해 돈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자기 생각 때문에 몇 역씩 날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한 몇몇 부자들은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매료되어 모든 돈을 투자해 집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기도 한다.
투자 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팔려하지 않고 본전을 원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그 결과로 전 재산을 잃고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부모가 자식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의심하며 돈을 지원하기 싫어하는데, 결국 지원했다가 집도 잃게 된다. 우리는 한 생각에 집착하면서 괴롭고, 그 생각이 진실한지 의심해야 한다.
생각 자체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리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음이라며, 우리는 종종 그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어떤 생각에 과하게 사로잡히는 것은 어리석음이라며, 이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상기해야 한다.
어리석음과 진실
사람들은 생생한 현실 대신 죽은 생각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꿈은 생명이 아닌 환상이며, 현실에서의 후회는 미련에 불과하다. 상대적 박탈감은 남들과 비교하는 무의미한 생각에서 비롯되며, 날마다 느끼는 행복은 상대적이지 않다.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히기보다 현재의 진실을 인정하고, 그 어떤 과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모든 괴로움은 생각에서 기인하며,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괴로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괴로움은 특정 이미지가 떠오를 때 나타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그 예이다. 이러한 모든 감정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이미지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이 실재가 아닌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분별에 있다고 말씀하시며, 생각의 내용물을 따라가는 것이 어리석음임을 강조하였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든 생각과 감정은 결국 무상하며, 불변의 진리인 불생불멸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좋거나 나쁜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생각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며, 이는 제행무상과 비실체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고정된 실제적 자아가 없고, 모든 것이 변해가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바다 위의 파도처럼, 아름다운 파도와 지질한 파도가 생겨나는 것 모두 동일하며,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나의 본질이 바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겨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인연은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야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100%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요하다. 인연이 모여 결과를 형성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많은 인연이 필요하다. 부처님도 인연법과 업의 고리를 알기에 현실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으며 인연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나는 기대 없이 최선을 다하고, 인생의 진실은 나를 돕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혼란스럽지 않으며, 예를 들어 큰 스님들은 귀신을 보고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일을 보고도 끌려다니며 불안해할 수 있다. 귀신이 있든 없든, 모든 것은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생각과 감정 또한 여기에 실재한다. 결국 분별심이 생겨났다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 내용물에 그대로 몰입하기 쉬운 존재이다.
우리는 소리의 내용물, 보이는 내용물, 떠올린 이미지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에 대해 깊이 반응하고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변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와 여러분, 지금 보이는 것이 있는지 고민해 보면, 모든 것이 현재 여기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그들을 떠올릴 때 생각이 여기에 떠오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징기스칸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 또한, 우리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경험되며, 결국 이 '여기'를 마음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마음의 본질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음은 감각을 통해 세상이 보이게 하고,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밝음의 역할도 함께 한다.
마음변화에 대한 고찰
마음에는 형태나 크기가 없기 때문에 '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허공 법신'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부처는 법신이라고 하여 법을 몸소 행하는 존재로서, 진짜 부처는 이 허공 법신이다. 여러분의 삶은 결국 이 허공 법신에서 펼쳐지며, 모든 생각과 사건이 여기서 발생한다.
만법은 오로지 여러분의 분별에 의해 나타나고 사라지므로, 생겨나고 줄어드는 것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동일한 바탕에서 이루어지며, 부처와 같은 거룩한 상은 그저 여러분의 인식에 불과하다.
부처는 모양이 아닌, 마음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미지는 부처와 변기를 다르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런 이미지가 어떻게 떠오르냐면, 버려진 변기에서 느끼는 감정과 연결되며, 결국 부처와 똥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부처는 똥과 같으며, 실제로 똥은 부처의 상징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법의 자리에서 부처와 똥은 같으며, 50억을 벌었거나 10억을 날린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이미지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며, 감정이 뒤바뀌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지에 따라가면 괴로워지며, 60억에서 50억을 잃은 상황에서 여전히 10억으로 살 수 있지만, 마음을 비워야 한다. 대기업 회장님의 재산이 본인이 아닌 것처럼, 우리도 남의 재산을 보며 부러워할 뿐이다. 내 인생의 고통과 우울은 사실은 이미지일 뿐 진짜가 아니다.
노자가 말한 어두운 공간처럼, 생각은 본마음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에고가 자기를 방어한다. 자기 마음을 깨닫는 공부가 중요하지만, 자기 분별심이 자기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생명은 여기에서 시작되며, 이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세상도 나옵니다. 이 마음이 첫 번째 자리이며,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것과 싫은 것에 사로잡히지 말고, 진정한 사랑과 자비를 알아가야 한다.
이 깨달음이 여러분 안에서 나올 것이며,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부처와 같은 마음을 가지며, 모든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다.
우리는 실제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도구로 사용되는 존재일 뿐이다. 각자의 존재는 결국 하나의 장소에서 왔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분별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진실에 뿌리내리고 있을 때, 모든 복잡한 일무가 있지만 실은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리의 거울이 되어야 모든 것을 비출 수 있으며, 진정한 본래면목은 이 거울 속에 존재한다. 빛과 어둠은 궁극적으로 동등하며, 성인은 어느 한쪽도 택할 수 없는 법이다.
불교를 거룩한 것으로 한정짓는 것은 개인의 거룩함을 부정하게 된다. 부처와 스님들을 상대적으로 올려놓는 것은 나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며, 결국 본래의 나와 연결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달마 혁명론에서는 성불의 여부가 개인의 행위와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마음의 본질이 청정하다고 말한다. 또한, 붙잡힌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부를 시작해야 하며,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와 본래의 자각에 있다.
여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생각은 안 좋은 생각이며, 개인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사람의 진짜 마음은 성별, 나이, 출가와 같은 실체가 없으며, 모두 하나의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
부처님이 내 앞에 와도 놀라지 않아야 하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각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모든 사람이 다르게 보여도 그 근본에는 차별이 없다.
공부에는 전제 조건이 없기에, 누구든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부처님은 그 범죄자를 받아주고 공부를 이끌어 주었으며, 그 결과로 대평 등한 개념이 드러났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범죄자와 같다는 생각이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주는 것이다. 이 점은 자아의 집착에서 오는 것이며, 모든 것이 허공 법신이라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