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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의 불교적 해석 2편

by 과유과 2024. 7. 7.

1편에 이어 2편 이어 갑니다. 그 어디선가 이런 영상을 봤어요. 사람들이 대여섯 명이 돌려서 가지고 공을 서로 이렇게 이렇게 던져 줘요. 그럼 이제이 영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공을 몇 번 던져 주고 나서, 그다음에 뭐 어떤 행동을 할 거니까, 이게 몇 번 던져줬는지를 한번 세 봐라. 뭐 몇 번 던져주고 나서 내가 이걸 갑자기 끈다든지 이럴 거니까 몇 번 던져줬는지를 한번 세 봐라.

 

인식과 착각

이래놓고 아마 못 쓸 걸요. 이러면서 그 간단한 걸 왜 못 해. 우리는 전부 다 공 몇 번 던지는 것만 관심이 있다가 있잖아요. 그래서 공을 이렇게 던지고, 이렇게 던지고, 이렇게 던지고,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 둘 셋넷. 이러고 있는 사이에 껐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 뜬금없이 공 몇 번 던졌어요.

 

이걸 물어봐야 되는데, 그 사람이 공 던지는 거 말고 거기 왔다 갔다 한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 봤습니까? 이렇게 물어봐요. 말이 되는 그런 게 없었는데. 전부 다 거기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냐고, 무슨 고릴라 갔다 했냐고. 고릴라가 나와서 춤까지 추고 갔다는 거예요. 아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우리가 다이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떨어지는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무도 못 봤는데요. 말이 되냐, 절대 못 봤다. 없다, 그런 거 없다 그랬어요.

 

그럼 돌려서 다시 보여드립니다. 공 보지 말고 이제 고릴라 보세요. 그러고 제 생각을 했는데, 공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사이에 고릴라 복장을 한 남자가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춤추면서 들어가는 거예요. 아무도 못 봤어요, 눈으로 봤는데도 못 본 거잖아요. 자기 보라고 와서 춤까지 치고 갔는데도 못 보잖아요. 왜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요, 자기 꽂히는 것만 봐요. 그러니까 봤다고 해서 진짜 본 게 아니에요.

 

이제 요거는 이제 나중에 그 분별의식 시기라는 걸 얘기할 때 좀 더 리얼하게 나오게 되고요. 이렇게 우리는 내가 세상을 본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어떻게 분별하느냐 하면 보는 내가 여기에 주관으로서 전 따로 존재하는 줄 알고 바깥에 보이는 세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눈 깊고 혐오 뜻을 가지고 보는 작용이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냄새 맡고 내가 맛보고 내가 감촉하고 내가 생각한다라고 여기에 자아라는 험한 분별을 개입시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보고 내가 듣지 하면서 이 보는 나 듣는 나라는 분별을 개입시켜요.

 

그것을 육 내 입처 눈 깊고 현금 뜻이라는 독자적인 세계가 따로 존재해라고 느끼는 색 입처 성 소리라는 성 입처 이렇게 색상의 위축법이나 입추가 따로 있다고 존재하는 허망한 망상 분별 그걸 잊혀라고 불러요 그래서 12입처라고 불러요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육 근 육경과 6 매입처 육 외입처는 사실은 같은 걸 얘기하는 거 같은데 조금 달라요 정말 다르죠,

 

육 근은 청정하게 수호해야 됩니다. 즉, 보는 걸 가지고 내가 본다라고 생각하는 그건 망상이라는 거예요. 보는 기능 이거는 왜 청정하게 수여해야 된다고 했을까요? 유기처럼 끌려가지 않게 분별망상으로 끌려가지 않는이 첫 번째 자리에서 보기만 한단 말이에요. 청정하게 봐라 이거예요,

 

청정한 육근

 

분별이 오염되지 않게 육진 티끌에 오염되지 않게 육군을 청정하게 수호해라. 볼 때는 볼뿐들을 땐들을 뿐 해야 되는데, 보자마자 좋다 나쁘다 해석하고 듣자마자 저 탄압보다 해석하고 그 해석하는 건 왜 해석할까요? 내가 본다고 생각하니까,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인지 도움 안 되는 사람인지 이걸 해석해서 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서 오염이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육근이 청정해지지가 않는 거예요. 우리는 보는 걸 청정하게 보지 않잖아요. 이건 좋고 저건 싫다고 보잖아요. 이건 내 편이고 저건 내 편이 아니다 이렇게 보잖아요. 오염이 됐단 말이죠. 육근이 청정하지 못하단 말이죠.

 

근데 어떻게 하면 청정해야 되느냐? 12 입찰을 면하면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 내 바깥에 실제적 대상이 있고 실제로 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허망한 망상, 그 시비 입찰을 멸했을 때 청정한 유권으로 수호된단 말이죠. 육 근 청정이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육 근은 인연 따라 생겨난 우리 안에 6가지 감각 기능, 감각 활동을 의미하고 인천은 그 육 근을 보고 나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의식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입찰하는 말 자체가 약간 정신적인 기능, 의식 이런 걸 얘기를 해요. 그래서 12 입체에서 명색을 멸하면 유기비 소멸된다. 그래서 이것은 다 소멸시켜야 될 허망한 망상, 분별이라는 것이죠.

 

몇 가지 말씀드린 것처럼 이 무안이 서신의 무색성향 위촉법이라고 해서 부처님께서 이 12처를 설하신 이유는 눈 깊고 현금 뜻이 내가 있고 바깥에 색상을 미처 법이 진짜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이 교회를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것이 무아인데 왜 무아냐 오온이기 때문에 뭐 하고 12척이기 때문에 무하다 이렇게 설명하신 거예요.

 

소멸에 대한 인식

오온이 색 수상행식이 실제 있다라는 게 아니라 색 비었지 않느냐, 소리 느낌 생각 의지의식이 다 비었지 않느냐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거 아니냐 이걸 설명했잖아요. 앞에서 오온에서 그러니까 무아다 이렇게 설명했잖아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 이해를 여전히 못하는 사람이 생긴단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아를 다양하게 설명하셨어요, 연기무아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해 주셨어요. 대표적으로 그 그래서 대표적인 게 오온과 이제 12처예요.

 

그래서 12처를 사라는 걸 통해서 눈 깊고 혐오 뜻 이걸 나라고 여기고 색상 위축법을 내 바깥에는 실제라고 여기는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진실한 것이 아니다는 걸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내가 당연시 여기면서 보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내가 저것을 본다. 이런 허망한 망상을 제외하고, 그래서 명상이 이거 하는 연습이에요. 명상하면서 이렇게 명상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어떤 소리가 들려요. 그럴 때 들을 때는 듣는 것만 있게 해라, 볼 때는 보는 것만 있게 해라, 볼뿐들을 뿐 이런 말을 하죠.

 

명상을 하다가 어떤 소리가 들, 종소리가 들리거나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리거나 할 때 우리는 그 자리에서 그냥 들을 뿐에 있어요. 그전에는 '내가 저 소리를 듣는다'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소리를 관한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이렇게 그림 그려 놓고는 빵 하면 아, 자동차가 지나가다 가는가 보다'라고 상상하면서 그거를 관찰해요.

 

자동차가 빵빵거리는구나 하고 관찰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몸을 관찰하라고 하거든요. 신수신법 몸을 관찰한다 할 때 눈을 감고 힘을 빼세요, 머리에 힘을 빼세요, 눈을 관찰해 보세요, 어깨를 관찰해 보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거 관찰하세요.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면 눈을 관찰하면서 '내가 이렇게 앉아 있는 이미지 명상이라 그랬죠'. '나'라는 존재와 상 모양. '내가 이렇게 자선하고 앉아 있는 그림을 그려놓은 다음에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다음에 내 눈을 이렇게 그려놓고 그 눈을 바라봐요' 관할 때. 그리고 내 코를 바라보고 코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관찰하라고 하면 '내 이미지를 그려놓고 코를 그려놓고 코로 숨이 들어온다 숨이 나간다' 이걸 상상하면서 이걸 관찰한다고 느낀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는 명상이죠. 이름과 모양이죠. 실제, 실제 벌어지는 일 그 모양을 다 빼고 상. 금강경에서 상을 타파하라 그랬잖아요. 이게 다 모양 이미지로 그려놓은 그림이잖아. '나'라는 이미지가 이렇게 앉아 있는 그림. 엉덩이를 관찰하세요 하면, 내가 의자 위에 앉을 때, 방석 위에 앉아 있고, 방석과 내 엉덩이가 느껴지는 이 감촉을 이렇게 느낀다고 말이야.

 

그림을 그려놓고 느낀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 면과 상, 이름과 개념을 빼버리면 빼버리고, 진짜 직접적인 자기 경험에서 자기가 확인해야 해요. 제가 하는 말이 이건 둘이 아니에요. 이러면 둘이 아닌가 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진짜 자기 경험 속에서 정말 이 소리가 들릴 때, 이 소리와 내가 둘이 아닌가를 자기 경험으로 직접 확인하란 말이에요.